『폭풍의 언덕』에밀리 브런테
[책장 너머]시간을 건넌 고전
『폭풍의 언덕』의 히스클리프는 처음부터 이 세계의 ‘바깥에 있는 사람’입니다. 어느 날 언쇼가 리버풀 거리에서 데려온 아이. 부모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 수 없고 재산도 지위도 없습니다. 외모 역시 주변 사람들과 다르게 묘사됩니다. 에밀리 브론테는 그의 인종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그의 어두운 외모를 보며 집시나 다른 민족 출신일 가능성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히스클리프는 처음부터 가난과 출신, 계급뿐 아니라 인종적으로도 ‘우리와 다른 사람’으로 취급되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캐서린의 선택도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캐서린은 히스클리프를 사랑하지만 에드거 린턴과 결혼합니다. 단순히 사랑보다 돈을 선택했다고 말하기에는 당시의 계급사회가 두 사람 사이에 너무 크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히스클리프와 결혼한다는 것은 캐서린에게 자신의 사회적 지위까지 포기하는 선택이 될 수 있었으니까요. 결국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은 것은 성격이나 오해만이 아니라 출신과 재산, 계급이라는 사회의 질서이기도 합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히스클리프가 몇 년 후 부와 힘을 가진 사람이 되어 돌아온 뒤입니다. 차별받고 멸시받던 사람이었던 그는 이제 돈과 재산, 결혼과 상속이라는 그 사회의 규칙을 이용해 자신을 괴롭혔던 사람들에게 복수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자신 역시 다른 사람을 억압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히스클리프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습니다. "그는 원래 잔인한 사람이었을까요? 아니면 그를 끊임없이 밀어냈던 사회가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일까요? 그리고 차별받던 사람이 힘을 갖게 된 뒤 자신을 억압했던 방식으로 다시 다른 사람을 억압한다면, 복수는 과연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요?"
2011년 안드레아 아널드 감독의 영화가 히스클리프 역에 흑인 배우 제임스 하우슨을 캐스팅한 것도 이런 해석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원작에서 모호하게 남겨두었던 히스클리프의 ‘이방인성’을 영화에서는 피부색을 통해 눈앞에 드러낸 것이지요. 덕분에 『폭풍의 언덕』은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격렬한 사랑을 넘어 누가 사회 안에 속할 수 있는가, 계급과 출신은 한 사람의 삶을 얼마나 결정하는가, 그리고 차별과 상처는 어떻게 폭력과 복수로 대물림되는가를 묻는 작품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폭풍의 언덕』을 읽으며 두 가지 질문을 함께 가져가도 좋겠습니다.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관계는 정말 사랑이었을까?”
그리고,
“히스클리프는 괴물이었을까, 아니면 그를 배척한 사회가 만들어낸 괴물이었을까?”
어쩌면 『폭풍의 언덕』이 오래도록 읽히는 이유는 이 두 질문 모두에 쉽게 답할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폭풍의 언덕』만큼이나 흥미로운 것이 작가 에밀리 브론테의 삶입니다. 언니 샬럿은 『제인 에어』를, 동생 앤은 『아그네스 그레이』를 썼습니다. 세 자매는 여성 작가에 대한 편견이 강했던 시대에 각각 남성처럼 보이는 필명으로 작품을 발표했고, 에밀리 역시 ‘Ellis Bell’이라는 이름 뒤에 자신을 숨겼습니다.
그녀가 살았던 곳은 영국 요크셔의 작은 마을 하워스였습니다. 목사였던 아버지의 집 주변에는 묘지와 거친 황야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에밀리는 그 황야를 무척 사랑했고, 그곳을 오래 걸었습니다. 그래서 『폭풍의 언덕』의 거센 바람과 황량한 들판은 단순히 작가가 상상해낸 풍경만은 아닙니다. 에밀리가 평생 바라보고 걸었던 세계가 소설 속으로 들어온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조용하고 고립된 삶을 살았던 여성이 어떻게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처럼 격렬한 인물들을 만들어냈을까요? 에밀리는 『폭풍의 언덕』을 발표한 다음 해, 불과 서른 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다른 소설을 한 편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녀가 세상에 남긴 유일한 소설이 『폭풍의 언덕』입니다.
그래서 가끔 궁금해집니다. 에밀리 브론테가 조금 더 오래 살았다면 어떤 소설을 썼을까요? 우리는 『폭풍의 언덕』을 한 작가의 대표작이라고 부르지만, 어쩌면 그것은 이제 막 자신의 세계를 보여주기 시작했던 젊은 작가의 첫 번째 소설이었을지도 모릅니다.